김수용 (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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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수용은 1958년 영화 《공처가》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이다. 그는 안성공립농업학교,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전쟁 중 육군에 복무하며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초기에는 코미디 영화를 연출했으나, 1963년 《굴비》를 기점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은 작품을 만들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갯마을》(1965), 《만추》(1982) 등이 있으며, 100편이 넘는 다작을 연출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김수용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며, 영화감독 최초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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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 (영화 감독)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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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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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김수용 |
한자 표기 | 金洙容 |
로마자 표기 | Gim Su-yong |
출생일 | 1929년 9월 23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경기도 안성 |
사망일 | 2023년 12월 3일 |
직업 | 영화 감독 |
활동 기간 | 1958년–1999년 |
종교 | 불교 |
본관 | 안동(安東) |
학력 | |
모교 |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서울예술전문대학 영화학과 특임강사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특임교수 |
경력 | |
군 복무 | 대한민국 육군 대위 (1951년~1958년)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 근무 일본어 통역장교 영어 통역장교 정훈장교 |
주요 참전 | 한국 전쟁 |
기타 이력 | 영화감독 겸 영화연출가 소설가 겸 극작가 연극배우 겸 연극연출가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
2. 생애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이천과 평택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안성공립농업학교와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했으며, 청소년기부터 문학과 연극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습작 소설을 쓰고, 자작 희곡으로 연극 무대에 서는 등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였다.[1]
1946년경 서울사범학교 연극부 부장 연출가로 활동하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 대한민국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에 배속되었다. 그곳에서 선우 휘의 지휘 아래 30여 편의 군인 교육용 영화를 만들었다.[1]
이후 영화감독 양주남의 조감독으로 《배뱅이굿》(1957) 촬영에 참여하며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았고, 이듬해 《공처가》로 감독 데뷔를 하였다. 초기에는 희극 영화를 주로 만들었으나, 1963년 《굴비》를 기점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은 진지한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했다.[1]
대표작으로는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갯마을》(1965), 《야행》(1977), 《화려한 외출》(1978), 《도시로 간 처녀》(1981), 《만추》(1982) 등이 있다. 중광을 다룬 《허튼소리》(1986)는 불교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100편이 넘는 작품을 연출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1]
1991년까지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1992년까지 서울예술전문대학 영화학과 특임강사 겸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특임교수를 역임하였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며, 영화감독으로는 최초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역임했다.
2. 1. 유년 시절과 교육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였고 이천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냈으며 그 후 평택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냈다. 안성공립농업학교를 거쳐 서울교육대학교의 전신인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청소년 시절 문학에 관심을 가져 습작 소설을 쓰기도 했고, 자작 희곡을 무대에 올려 연출과 주연을 겸하는 등 연극에도 자질을 보였다.[1]2. 2. 군 복무와 영화계 입문
한국 전쟁 중이던 1951년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육군 갑종장교 임관하여 대한민국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에 배속되면서 처음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1] 정훈국에서는 작가 선우 휘의 지휘 아래 군인 교육용 영화를 약 30여 편 만들었다.[1]당시 문관으로 근무하던 영화감독 양주남의 주선으로 그의 조감독이 되면서 《배뱅이굿》(1957) 촬영에 참가하였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영화 작업에 뛰어들게 되었다.[1] 이듬해 코미디 영화인 《공처가》로 영화감독이 되었다.[1]
2. 3. 영화감독 데뷔와 초기 활동
1951년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육군 갑종장교 임관하여 대한민국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에 배속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1] 정훈국에서는 작가 선우 휘의 지휘 아래 군인 교육용 영화를 약 30여 편 만들었다.[1]당시 문관으로 근무하던 영화감독 양주남의 주선으로 그의 조감독이 되면서 《배뱅이굿》(1957) 촬영에 참가, 본격적인 영화 작업에 뛰어들게 되었고,[1] 이듬해 코미디 영화인 《공처가》로 영화감독 데뷔를 하였다.[1] 초기에는 《공처가》와 같은 계열의 희극 영화를 촬영했으나, 1963년 김승호와 황정순 주연의 《굴비》를 전환점으로 좀 더 진지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1]
2. 4. 대표작과 작품 세계
김수용은 초기에는 《공처가》와 같은 희극 영화를 주로 만들었으나, 1963년 《굴비》를 기점으로 사회 비판적인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1] 1965년에는 이윤복의 수기를 영화화한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어촌을 배경으로 한 《갯마을》을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1]1970년대에는 윤복희와 남궁원이 출연한 《야행》(1977), 윤정희와 이대근이 출연한 《화려한 외출》(1978) 등을 연출했다.[1] 1980년대에는 유지인이 출연한 《도시로 간 처녀》(1981), 김혜자와 정동환이 출연한 《만추》(1982) 등을 발표했다.[1]
1986년에는 기행 승려 중광을 다룬 《허튼소리》를 연출했으나, 불교계의 반발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1]
김수용은 100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한 다작 감독이지만,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1]
2. 5. 학계 활동 및 사회 활동
1991년까지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1992년까지 서울예술전문대학 영화학과 특임강사 겸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특임교수를 지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며, 영화감독으로는 최초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에 오르기도 했다.3. 학력
→경기도 평택 성동국민학교 졸업
→서울사범학교 졸업